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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1년 가을호

신작시 "우리는 모르는 시간" 수록

우리는 모르는 시간

하루 번 돈으로 하루를 살면

지갑 속 생각은 줄어듭니다

 

주머니의 입구처럼 현관문은

누구를 잠근 적 없습니다

 

아무도 들락거리지 않을 뿐

 

월세를 내는 건 내가 아니고

내가 없던 방 안의 시간입니다

 

문 너머 어둠은 더듬거림 없이

세월을 켜고 끄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이해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무언가 이해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불을 켜면 틈새로 숨어드는 더듬이 달린 소문들

들리지 않을 만큼의 크기로 젊음은 자신의 목소리부터 잊어갑니다

 

창틀은 자기 몫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눈을 감지 않습니다, 삐걱거리는 바람

 

오후의 소란을 제 것이라 우기는 방에게

미룰 수 있는 변명이란 없습니다

 

쓸쓸하다는 말도 나만 듣습니다

듣는 이 없는 사정은 연체됩니다

 

뜯지 않은 고지서의 절취선이

감은 눈으로 응시하는 고독

 

마음에는 굳은살이 배기지 않더군요

거친 손은 이제 어떤 은유도, 능력도 아닙니다

 

죽음이 삶의 기술이라면

나의 영혼은 일자리를 잃을 것입니다

 

유서 대신 밀린 지로용지를 받아들어도

이유 같은 건 찾지 마십시오

 

내가 있는 방 안의 시간이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잠그지 않습니다

 

 

 

 

 




 

정민식

 경기도 광명 출생. 세종대학교 국문학과 중퇴. 제9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수상.


https://blog.naver.com/webzineseein/22252278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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